종달새의 노랫소리를 들어라
버드나무 가지에 물이 오르고 가지마다 매달린 잎들은 연녹색이다. 호수의 넘실대는 물은 푸르고, 영산홍은 붉다. 공중에는 종달새가 높이 떴다. 어느 맑고 따스한 봄날이다. 봄날의 평화를 완성하는 것은 바로 종달새의 청아한 울음소리다. 공중에 제 맑은 울음소리를 뿌리는 종달새는 그 울음소리로써 생명의 약동을 노래한다. 종달새의 울음소리는 이 세계가 죽은 것들, 바위나 꺾여 죽은 나뭇가지, 고압선 철주나 콘크리트 건축물들, 이런 부동하는 딱딱한 사물들의 세계가 아니라 뛰고 날며 움직이는 생명들의 세계라는 걸 노래한다. 종달새의 노래를 들으며 우리가 말랑말랑한 생명의 놀라움과 기쁨으로 가득 찬 우주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장석주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시인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집중이라고 하면 너무 인위적인가요? 향유한다고 하겠습니다. 다른 생각을 하느라 흘려버리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을 향유하는 모습입니다. 버드나무 가지를 바라봅니다. 자세히 바라보았는지 나뭇가지에 물기가 있어 연해지고, 가지마다 연녹색 잎이 매달린 것꺼지 생생합니다.
나도 따라 상상하면서 기분이 좋아집니다. 자연에서 온 인간은 얼마나 자연이 편안한지요. 나는 유난히 봄을 좋아합니다. 어려서부터 그랬습니다. 아마 5살부터 그랬을 겁니다. 40년 가까이 봄을 좋아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봄의 완연함을 생각하니 미소가 지어집니다. 시인은 종달새의 울음소리가 봄날의 평화를 완성한다고 말하네요.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 모르지만 청아한 새소리가 들리는 듯도 합니다. 종달 종달하고 울 것 같기도 하고, 어느 다큐프로그램에서 그 청아함을 들은 듯도 합니다. 이런 새소리는 울음이라는 관용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간섭도 해 봅니다. 새의 언어라고 해 두겠습니다.
시인에게 감사합니다. 자신의 향유의 경험을 간접체험하게 해 주면서 내 맘에도 봄을 주셔서, 한가득 미소와 행복감이 번지게 해 주셔서.
하지만 아무리 많은 책을 읽은 다독가이면서 하루종일 글을 쓰는 시인에게도 동감이 되지 않는 부분은 있나봅니다. 종달새의 울음소리를 통해 생명을 느끼고, 바위나 꺾여 죽은 나뭇가지, 콘크리트의 딱딱한 사물을 부정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네요.
종달새의 운명 역시 딱딱한 사체이며 사체가 썩은 후 흙이 되고, 그 흙을 자양분으로 새로운 나무들이 움틀텐데요. 시인이 향유했던 버들가지도 결국 껶여 죽은 나뭇가지가 될 텐데요. 그런 것들을 모아 우리의 콘크리트 건물을 만드는 것인데요.
생명의 배경이 되어주는 바위와 콘크리트까지 모두, 더이상 청아한 소리로 우리 귀를 즐겁게 해주지 못하는 병들어 쳐져있는 어쩌면 죽음을 기다리는 알길없는 숲속의 여느 종달새에게도 모두 그 존재를 가치있게 여겨봅니다. 니가 있어 내가 있고 니가 있어 내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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