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를 꿈꾸는 이들에게(김재호)

의정부지방법원에서 민사소송 변론을 마친 후

김재호작가 2022. 11. 1.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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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의정부지방법원에 가서 변론을 하였습니다. 민사소송입니다. 손해배상청구소송이구요. 저는 원고의 소송대리인입니다. 오후 재판이었는데 10분 전에 법정에 도착했습니다. 앞에 진행중인 사건이 두건정도 있었습니다. 의도하지 않게 앞 사건의 원고 변호사의 주장, 피고 변호사의 주장, 재판장님의 재판진행 내용을 들었습니다. 제 사건도 아니고 굳이 듣고 싶지는 않았지만 들리니 들었습니다. 

 

나이 지긋한 50대 변호사님의 주장들이었습니다. 감정적인 이야기들도 조금 섞여 있었습니다. 이런 걸 보면 법정은 싸움장인 것 같기도 합니다. 싸움구경이 재밌다고 하는데, 법정 싸움 구경은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감정선이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사용하는 용어도 고상하고 딱딱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말투 사이에 베어있는 상한 감정은 은연중에 베어있어서 더욱 날카롭고, 드러내지 않아야 하는 곳이어서 더욱 잘 부각이 됩니다. 

 

오늘 제가 맡아 진행해 온 이 사건은 사실 변론 종결 후 판결선고기일이 지난 사건이었습니다. 그것도 지난 여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개월도 더 전에 말입니다. 그런데 판사님이 바뀌었습니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겠습니다. 법원 인사철이 아니니 아마도 판사님이 로펌으로 취업을 하셨거나, 개업을 하셨거나, 병으로 휴직하셨거나 뭐 그런 일이 있었거니 추측할 뿐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시법원에서 부터 시작해서, 청구금액을 높여 법원으로 사건이 이송되었다가, 판사님만 이번까지 3번째, 시법원 판사님까지 하면 4번째입니다. 

 

오늘 재판도 별일이 없었습니다. 판사변경으로 변론이 재개되었으니 응당 변론갱신 후 바로 판결선고기일을 잡을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피고가 주된 주장사실을 뒷받침하는 구체적 사실을 추가로 주장하고 증명하라고 하시는 게 뭡니까? 그래서 많이 당황했습니다. 12월에 재판을 다시 가면, 1월에야 판결이 선고될 듯 합니다. 

 

다행인 것은 증인신문, 감정절차를 통해 제가 대리하는 원고의 주장이 어느정도 증명된 것을 재판장님이 코멘트해 주신 것입니다. 승소는 거의 확실하지만, 손해배상 인정액이 얼마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의뢰인에게는 다행이요. 나에게는 마저 끝내지 못한 일이 남아있어 한켠 아주 조금의 부담이 이렇게 마음 속에 남아있습니다. 

 

변호사의 마음에는 언제나 부담감이 존재합니다. 그것이 드러나든지 아니면 감추어져 있든지 말입니다. 제가 변호사 일을 줄이고 지식컨텐츠일을 늘리는 것은 그런 부담감이 삶에 주는 영향도 있습니다. 물론 법원 판사님에게 잘보여야만 하는 그래서 을이 되어버리고야 마는 그래야 의뢰인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리적, 구조적 불편함도 있습니다. 그런 모든 것을 다 극복하고 마침내 저를 믿고 사건을 맡겨 준 고객에게 큰 도움을 주었을 때 느끼는 성취감, 자기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펼치며 드는 자기효능감, 한번씩 들어오는 목돈 이런 것들이 변호사님들을 일하게 하는 것이겠지요. 

 

가성비를 따지는 저는, 자기주도성을 중시하는 저는, 상하관계에 적응되지 않는 저는 사실 변호사일이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일을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텐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선택해서 나의 결정에 따라 결과가 좌우되는 일을 하고 싶은데, 선택권자인 고객, 결정권자인 법관에게 나의 마음이 휘둘리기 싫은데....이런 저런 욕구들이 모여 결국 저는 급하게 교수직을 알아보았다가...좀더 마음 속 깊은 곳의 소리를 듣고 이렇게 요즘은 글을 쓰고, 지식컨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대통령도 자기가 싫으면 안하는 것이고, 오늘 뵌 판사님도 자기가 사명감이 있으면 변호사보다 많이 일하고 돈은 적게 벌지만 사건 하나하나를 깊게 검토한 후 좀 더 타당한 판결을 내려고 재판날짜를 다시 잡고 또 변호사에게 추가로 무엇인가를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나는 변호사를 귀찮게 하더라도 사명감을 가지고 재판에 임하는 이런 판사님이 좋습니다. 권력의 크고 작음, 명예의 유무, 돈을 벌기 쉬움 여부를 불문하고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것이 참 소중함을 8년이 넘는 변호사기간동안 깊게 깨달았습니다. 

 

칼융이 아래와 같이 말한 것은 사실 제가 깨달은 것과 동일합니다. 제가 변호사 일을 거의 정리하고 있는 것에 현재로서는 확신을 가지는 것처럼, 아직까지 칼융은 저에게 참 좋은, 유익한, 멋진 심리학자입니다. 

 

 

Your vision will become clear only when you can look into your own heart. Who looks outside, dreams; who looks inside, awakes. -Carl Jung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비전이 분명해진다. 밖을 내다보는 사람은 꿈을 꾸고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깨어난다.

-칼 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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