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읽는니체(장재형)

디오니소스적인 삶의 태도란

김재호작가 2022. 11. 1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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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체는 ‘신의 죽음’을 선언한 후 도래한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초인, 힘에의 의지, 모든 가치의 전도, 아모르파티와 영원 회귀 등 많은 철학 원리를 제시했다. 이제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마지막 원리로서 최고의 긍정 양식인 ‘디오니소스적 긍정’을 살펴볼 차례이다. 건강한 인간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운명을 흔쾌히 짊어지고 나아가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창조의 기쁨과 영원한 삶에의 의지를 긍정하는 ‘디오니소스’의 개념이다. 고통스러운 삶의 문제들을 기쁨을 느끼면서 긍정적으로 보려는 삶에의 의지를 말한다. 이것이 바로 가장 낯설고 가혹한 삶의 문제들과 직면해 있으면서도 삶을 긍정하는 태도인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다. -장재형(마흔에 읽는 니체)

 

건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란 공포심에 질려 있거나 불안감에 떨면서 잘못된 판단과 선택,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고통도 의연히 수용하고 자기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다. 가능한 고통에도 번뇌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불안, 공포를 회피하려는 본능을 가진 인간은 그 본능 기저에 생존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불안, 공포가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육체적 생존이냐? 아니면 자유의지적 생존이냐? 생을 연명하는 것에서 삶의 의의를 찾을 것이냐 아니면 생을 창조하고 주도하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것이냐?

 

불안, 공포를 대하는 인간의 자세는 이를 수용하는 것으로 족한 것이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은 마치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은 한번의 사고로도 죽을 수 있다. 그러기에 생의 의지를 가진 본능이 이를 피하기 위해 불안해 하고 공포심을 갖는 것이다. 몸의 죽음은 필연 존재의 자유의 중단을 의미한다. 존재의 주체로서 살아가라는 니체의 말은 수긍하나, 그 전제로 인간의 숙명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그때 진정한 자유가 시작된다. 

 

나는 한계를 가진 인간이지만, 나는 내가 자유하는 방식으로 살기로 한다. 내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고통은 얼마든지 환영한다. 

 

이것이 불안, 공포를 대하는 종국적인 자세가 아닐까? 

 

(아테네가 세멜레에게 심장을 먹게하지 않았다면)디오니소스의 심장이 금새 멎는 것처럼, 사람의 생명도 사고, 사건, 질병, 고통 앞에 그리 강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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