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것이아름답다(장석주)

사람만하다. 생물만하다.

김재호작가 2022. 12. 16.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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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만하다. 생물만하다. 

 

 

나는 20대 초반 공군 사병으로 입대를 했습니다. 경남 진주 훈련소에 갔는데 수백명, 수천명의 훈련병을 발가벗기고 신체검사를 했습니다. 군의관은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훈련병 한명 한명의 00쪽을 살폈는데 얼마나 치욕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군의관은 비닐장갑을 끼고 있지만, 다른 훈련병의 00부분을 만진 접촉한 손이 나에게도 닿았을 때 그 찝찝함과 꺼림칙함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모든 훈련병의 옷이 발가벗겨졌을 때 나는 생소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생물체의 모습만 남긴 사람들은 다들 비슷해 보였습니다. 내가 어디에 살고, 어느 대학을 다니고, 내 부모가 누구이고, 내가 얼마나 유망한 사람이고, 내가 얼마나 힘이 세고, 내가 얼마나 머리가 좋고, 내가 얼마나 인기가 많고, 내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내가 얼마나 유명하고, 내가 얼마나 재능이 크고, 내가 얼마나 능력이 좋은지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감정은 아마 세계 최고의 부자가 죽는 순간에 경험하는 감정일 것입니다. 세계 최고의 강대국의 전직 대통령이 죽을 때 경험하는 감정입니다. 어느 왕권국가의 국왕이 죽을 때 경험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나에게 부여한 옷, 내가 사회에서 힘겹게 얻은 왕관, 부모가 물려 준 값진 신발 이것들이 나를 감싸 주었지만 사실은 이것들은 진정한 나는 아닙니다. 나는 그저 다른 모든 사람과 같은 구분할 수 없는 평범한 몸, 평범한 수명, 평범한 두뇌와 능력을 가진 사람에 불과합니다. 사회에서 뛰어난 지성이라고 치켜 세웠더라도,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라고 이름붙였더라도 그저 사람의 잠재력을 노력으로 잘 발현한 평범한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나는 정신적 관조와 생활의 단순함을 선호하는 내면 지향의 인간이지만, 미식가의 풍미에 맞춤한 별식을 찾는 일에 아무 가책도 없다.  사람은 기본적인 욕구의 결핍 상태를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이 고통에서 벗어날 때 행복해진다. 더 살맛나는 삶을 누리는 방법은 뜻밖에도 단순하다. 벗들과 우정을 나누라. 향기로운 음식을 먹고 즐거워하라. 훌륭한 예술 감상의 기회를 놓치지 마라. 숲속을 걷고 숙면을 취하라. 일상의 조촐한 기쁨을 배제하면 행복도 줄어든다. 에피쿠로스의 행복 철학은 따뜻하고 인간적이다. 나는 욕구의 즉각적인 충족없이 내적인 올바름만으로 행복해질 수는 없다고 믿은 이 고대 철학자를 지지한다.
-장석주

 

그런 평범한 사람으로서 우리가 느끼는 행복은 사실 대단한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웃게 되고, 좋아하는 음식의 맛을 깊게 느끼면서 진실의 미간을 찌뿌리고, 아름다움을 잘 표현한 음악, 그림, 글, 공연을 감상하면서 흠뻑 취하고, 때로는 고독속에서 자연속에서 진정한 자기를 대면하고, 푹 자고 쉬면서 몸과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입니다. 

 

장난감같은 우주선으로 달에 사람을 보냈다고, 전염병을 예방하는 백신을 만들었다고, 뛰어난 학습능력을 가진 AI를 개발했다고, 높은 건물을 건축했다고 사람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착각하며 살고 있지만 사람은 그저 사람만하다. 생물은 그저 생물만하다. 이것이 우리 본연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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