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악한 귀신 마가복음 5장 묵상 나눔

김재호작가 2023. 10. 12.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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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그들은 바다 건너편 거라사 사람들의 지역으로 갔다.
예수께서 배에서 내리시니, 곧 악한 귀신 들린 사람 하나가 무덤 사이에서 나와서, 예수와 만났다.
그는 무덤 사이에서 사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묶어 둘 수 없었다.
여러 번 쇠고랑과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쇠고랑도 부수었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 없었다.
그는 밤낮 무덤 사이나 산 속에서 살면서, 소리를 질러 대고, 돌로 제 몸에 상처를 내곤 하였다.
 

묵상:

악한 귀신이 사람 속에 들어가면

즉, 마음을 지배하면

짐승같은 삶을 살게 된다. 

아니, 짐승보다도 못한 삶을 살게 된다. 

자기 자신을 해칠 정도로 마음이 피폐해지기 때문이다. 

 

성경: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엎드려서
큰소리로 외쳤다. "더 없이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두고 애원합니다.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그것은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악한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명하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대답하였다. "군대입니다. 우리의 수가 많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리고는, 자기들을 그 지역에서 내쫓지 말아 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묵상:

악한 영이 보기에 예수는 가장 높은 자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이 육신으로 온 자이다. 

악한 영도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싫어한다. 

악한 영에게도 이름이 있다. 그 말은 영적인 세계에서 각각의 영적인 개체에 어떤 영적인 삶이 있다는 뜻이다. 

사람의 마음을 지배했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에게서 쫓겨나게 되는 것이 악한 귀신에게는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다. 

악을 행하지 못하는 것이 악한 귀신에게는 괴로운 일이다. 

 

성경:
마침 그 곳 산기슭에 놓아 기르는 큰 돼지 떼가 있었다.
귀신들이 예수께 간청하였다. "우리를 돼지들에게로 보내셔서, 그것들 속으로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예수께서 허락하시니, 악한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거의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가 바다 쪽으로 비탈을 내리달아, 바다에 빠져 죽었다.
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달아나 읍내와 시골에 이 일을 알렸다. 사람들은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보러 왔다.
그들은 예수에게 와서, 귀신 들린 사람 곧 군대 귀신에 사로잡혔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이 들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묵상:

귀신은 돼지와 같은 동물의 마음에 들어갈 수도 있다. 

악한 귀신은 돼지의 마음을 지배하고는, 악한 짓을 하여 돼지를 바다에 빠져 죽게 하였다.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 악한 영의 일이다. 

예수는 귀신들린 사람을 살렸다. 

귀신을 쫓아내자 귀신들린 사람은 제정신을 차렸다.

 

성경:  
처음부터 이 일을 본 사람들은, 귀신 들렸던 사람에게 일어난 일과 돼지 떼에게 일어난 일을 그들에게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께, 자기네 지역을 떠나 달라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예수와 함께 있게 해 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집으로 가서, 가족에게, 주님께서 너에게 큰 은혜를 베푸셔서 너를 불쌍히 여겨 주신 일을 이야기하여라."
그는 떠나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일을 데가볼리에 전파하였다. 그리하니 사람들이 다 놀랐다.
 

묵상:

귀신은 예수를 극도로 회피했지만,

귀신이 자기에게서 떠나간 사람은 예수와 함께 있기를 애원한다. 

그러나 예수는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와 함께 가고자 애원하는 것을 거절했다. 

그 사람은 불안했기에, 다시 귀신들릴 것이 무서웠기에 예수와 함께 있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그에게 평화를 준다. 이미 귀신은 떠났기에 무서울 것이 없다. 

하나님이 너에게 이미 큰 은혜를 베푸셨고, 자비를 베푸셨으니, 걱정말아라. 

하나님의 명령을 귀신은 거역할 수 없다. 

 

"Go home to your family and tell them how much the Lord has done for you, and how he has had mercy on you."
 

성경:
예수께서 배를 타고 맞은편으로 다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예수께로 모여들었다. 예수께서 바닷가에 계시는데,
회당장 가운데서 야이로라고 하는 사람이 찾아와서 예수를 뵙고, 그 발 아래에 엎드려서
간곡히 청하였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어 고쳐 주시고, 살려 주십시오."
그래서 예수께서 그와 함께 가셨다. 큰 무리가 뒤따라오면서 예수를 밀어댔다.
그런데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아 온 여자가 있었다.
여러 의사에게 보이면서, 고생도 많이 하고, 재산도 다 없앴으나, 아무 효력이 없었고, 상태는 더 악화되었다.
이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서, 뒤에서 무리 가운데로 끼여 들어와서는, 예수의 옷에 손을 대었다.
(그 여자는 "내가 그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나을 터인데!"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곧 출혈의 근원이 마르니, 그 여자는 몸이 나은 것을 느꼈다.
예수께서는 곧 자기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몸으로 느끼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아서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예수께 "무리가 선생님을 에워싸고 떠밀고 있는데, 누가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십니까?" 하고 반문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렇게 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셨다.
그 여자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므로, 두려워하여 떨면서, 예수께로 나아와 엎드려서 사실대로 다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이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하여라."

 

사람은 자신의 큰 문제 앞에서 절망한다. 

사람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는다. 

자기 자신을 내려놓게 된다. 

회당장은 율법에 충실한 자이다.

안식일의 규례를 형식적으로 엄격히 지키는 자로서, 예수를 아마도 배격했던 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의 딸이 죽어감을 볼 때, 그는 본질적으로 하나님만이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죽음은 그 누구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세상에 와서 병든 자를 고치는 기적을 행하는 것을 회당장은 듣고, 희망을 가졌다. 

 

혈루증을 앓은 여자도 마찬가지이다. 

큰 무리 속을 걷은 예수의 옷에 손을 대려고 했다. 

예수는 무리에게서 밀리면서, 그 여인이 자기의 옷에 손을 대어 병이 나은 것, 자기의 능력이 나간 것을 느꼈다. 

예수는 그 여자에게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이 병을 고쳤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생명이며, 사랑이시기에 예수를 통해 병으로 고통당하는 자, 생명의 기운이 소멸해 가는 자에게 생명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여자가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생명을 신뢰하였기 때문이다. 

 "Daughter, your faith has healed you. Go in peace and be freed from your suffering."

하나님에게 모든 여자는 딸이요, 하나님에게 모든 남자는 아들이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예수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었을 때에는 보통 사람들의 간청과 그에 응답한 예수의 선언의 순서로 나아간다. 

그러나 이 여자는 이미 마음 속에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에게 간청을 하지 않고도, 그리고 예수가 병이 나음을 선언하지 않고도, 믿음대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 여자는 그 순간에 믿음으로 하나님과 하나된 마음을 가진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마음의 준비를 마친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마음의 문을 여는 자에게 들어가신다. 심지어 죽기 직전에 하나님에게 마음을 연 십자가 위의 강도에게도 하나님은 들어가신다. 그만큼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크고 영원하다.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시도록, 사람은 자기 마음을 하나님에게 열어야 한다. 

주기도문처럼,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고 마음을 담아 고백해야 한다.  

 

성경:

예수께서 말씀을 계속하고 계시는데,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말하였다. "따님이 죽었습니다. 이제 선생님을 더 괴롭혀서 무엇하겠습니까?"
예수께서 이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서,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밖에는, 아무도 따라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께서 사람들이 울며 통곡하며 떠드는 것을 보시고,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떠들며 울고 있느냐? 그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그들은 예수를 비웃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다 내보내신 뒤에, 아이의 부모와 일행을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달리다굼!"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거라" 하는 말이다.)
그러자 소녀는 곧 일어나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엄하게 명하시고,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다.

 

묵상:

예수는 당황하지 않는다. 

왜 그는 당황하지 않는가?

죽기 직전의 소녀를 살리려고 가는 도중에 소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당황스럽다. 

그러나 예수는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녀의 아버지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한다. 믿기만 하라고 명한다. 

하나님은 미래에도 이미 있다. 시간을 초월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미래의 일을 이미 아신다. 

예수는 하나님과 하나이다. 그러므로 미래의 일을 이미 안다. 

하나님은 생명이다. 생명이 끊어진 것에 다시 생명을 공급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는 당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예수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따라오라고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는 영적으로 소녀의 상태를 보고 있었다. 

그 소녀는 육체로는 숨이 넘어가 죽어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살아있기에 잠든 상태에 불과하였다. 

하나님은 말로 세상을 만들었고, 말로 죽은 소녀를 일으켰다. 

 

예수는 죽은 소녀를 살린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명령한다. 

사람들은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기적, 자연법칙을 초월하는 기적에 집중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기적이 나에게 일어나는 것을 상상한다. 

그러나 예수는 자연법칙을 초월한 기적의 이면에 계신 하나님을 알리려고 왔다. 

하나님이 생명이요, 사랑이요, 사람의 구원임을 알리려고 왔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이 세상의 것들(목숨, 재산, 명예, 권력, 건강)에 집중하는 한,

그것들에 시선이 가려, 시선이 갇혀, 하나님을 제대로 볼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은 기적을 자기를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는 하나님을 드러내려고 하지, 결코 기적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는 사랑하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제한된 두뇌, 생각, 감각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으나,

하나님 자신이신 사랑을 실천함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눈먼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의 한계를 벗어나, 하나님을 받아들이면

더이상 마음이 주는 헛된 욕망에 굴복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이 마음껏 내 안에서 활동하시면,

그것이 바로 천국이다. 

겨자씨의 비유와 같이 결국 큰 나무를 이루어 많은 새들이 깃들이게 된다. 

생명의 열매, 사랑의 열매가 30배, 60배, 100배로 결실을 맺게 된다. 

 

악한 귀신들린 자는 무덤이나 산속에서 살면서, 

소리를 지르고, 자기 몸을 상하게 하였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마음이 있는 곳은 이렇게 어둠이요, 죽음이요, 파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있는 곳에는

병고침이 있고, 

좋은 것을 나눔이 있고, 

진리가 있고, 

능력이 있고,

생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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