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내 직업은 글쓰기였다. 스물여섯 살 무렵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글을 썼다. 30대 중반 독일 유학생 시절에는 <한겨레> 통신원으로 일하면서 국제면 기사를 썼고 마흔 무렵에는 여러 해 동안 신문 칼럼을 썼다. 라디오 대담 프로그램과 텔레비전 방송 토론 프로그램 진행자 일을 할 때도 방송국에 가지 않는 날은 집에서 글을 썼다. 정치를 했던 10년 동안에도 현안에 대한 생각을 규칙적으로 홈페이지에 올렸다. 정치를 떠나 문필업으로 복귀한 뒤로는 해마다 한두 권씩 책을 낸다. 정신이 멀쩡하게 살아 있는 한 내가 글쓰기를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 글과 강연과 토론을 즐겨 보는 분들은 날카로운 논리로 상대방의 허점을 들추어내면서 자기주장을 펴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고들 한다. 그건 아마도 세상 보는 눈이 비슷해서 그럴 것이다. 생각이 크게 다르면 똑같은 이유 때문에 나를 싫어한다. 그런 사람들은 내 책을 읽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그리 길지도 않은 인생, 좋아하는 사람 책도 다 읽지 못하는데 싫어하는 사람이 쓴 글을 뭐하려 읽는단 말인가. 나는 산문을 쓴다. 산문 중에도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에세이를 쓴다. 관심 분야는 역사, 문화, 정치, 경제 등으로 다양한 편이다. 젊었을 때 단편소설을 하나 발표한 적이 있지만 문학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나는 에세이를 되도록 문학적으로 쓰려고 노력한다. 논리적인 글도 잘 쓰면 예술 근처에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건 예술이야! 남이 쓴 글이든 내가 쓴 것이든, 칼럼이나 에세이를 읽으면서 그렇게 감탄할 때가 있다. 논리의 아름다움, 논증의 미학을 보여주는 글을 만나면 그렇게 된다. 세상을 보는 눈이 어떠하든, 진보든 보수든, 논리가 정확하고 문장이 깔끔한 글을 나는 좋아한다.
위 유시민의 글은 논리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구조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 밑줄처럼 표현을 창의적이고 개성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늙어 죽을 때까지 글을 쓸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1) 구어체 느낌, 부정어 마무리를 통한 강조 등 진부한 표현을 삼가고 있습니다.
논증형식의 글쓰기지만 자신의 인생을 구체적이고 압축적으로 소재에 맞게 전달하여, 네러티브(젊었을 때 단편소설을 하나 발표한 적이 있지만 문학과는 거리가 멀다)를 가미하였습니다. 자신의 생각 뿐 아니라 타인의 평가도 곁들여 글을 심심하지 않고 다채롭게 끌고 가고 있습니다.
나열식, 점층식, 확장식은 글쓴이의 즉흥적 아이디어 만들기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주제를 떠올리며 드는 생각을 나열하고, 생각이 확장되는 과정을 그대로 즉흥적으로 글로 옮기는 것입니다. 즉흥의 위험을 막아주는 것은 주제의 제한성, 논증구조 등입니다. 결국 즉흥적인 면에서 더 생생하고, 논증의 면에서 일관성은 유지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유시민은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감성적인 면을 계속 터치합니다. 네러티브가 그렇고, 중간중간의 독백이나 구어체 문장(그리 길지도 않은 인생, 좋아하는 사람 책도 다 읽지 못하는데 싫어하는 사람이 쓴 글을 뭐하려 읽는단 말인가, 이건 예술이야!), 자신의 좋고 싫음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진보든 보수든, 논리가 정확하고 문장이 깔끔한 글을 나는 좋아한다) 등이 그렇습니다.
위 글의 특징은 좀더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논리구조
-주장: 내 직업은 글쓰기였다.
-근거: 1) 26세부터 지금까지 썼다. 2) 유학생시절에도 썼다. 3) 라디오, 티비 진행자할 때도 썼다. 4) 정치인시절에도 썼다. 5) 정치를 마친 후에도 썼다. 6) 앞으로도 쓸 것이다.
-주장: 사람들이 내 글 날카로운 논리, 상대방의 허점 간파의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관점이 비슷한 사람이 하는 말일 뿐이다.
-근거: 1) 생각이 다른 사람은 내 글을 나를 싫어한다. 2) 내 글을 안 읽는다. 3) 싫어하는 사람의 글은 안 읽는다.
-점층/나열/기호표현(공감/감성): 나는 산문을 쓴다. 에세이를 쓴다. 다양한 관심분야를 쓴다. 문학은 잘 안쓴다. 에세이를 문학적으로 쓴다. 예술적으로 쓰려고, 논증의 미학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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