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를 꿈꾸는 이들에게(김재호)

변호사님은 반에서 몇등했어요?

김재호작가 2023. 3. 1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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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님은 반에서 몇등했어요? 

 

진로강의를 나가면 학생들이 이렇게 물어봅니다.

 

나는 변호사 치고는 공부 별로 못했어. 

 

초등학생때는 1등이나 2등을 했어. 전교생이 20명인 섬마을 학교에서.

중학생때는 반에서 50명중 10등정도 했어.

고등학생때는 인문계열 전교생 200명중 10등 정도 했어. 

 

저는 섬마을 학교에서는 전교 1등을 했죠.

그리고 경기도 수원에 있는 중학교를 다닐 때는 상위 20%정도였습니다. 

수원소재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상위 5%정도를 했습니다. 

 

수능도 그 당시 상위 5%정도의 한국외대 법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수능점수는 그보다 좀 더 낮았지만, 고등학교 국어, 영어 성적을 반영하는 특차에 합격했습니다. 

 

보통 변호사들은 서울대출신이 가장 많습니다. 고려대와 연세대 출신까지 하면 전체 변호사의 절반에서 2/3정도가 될 듯 합니다. 그러니 저는 변호사 중에 수능점수가 많이 낮은 편이죠.

 

실제로 저는 태어날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지적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습니다.

IQ검사도 105~135사이를 왔다갔다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친구들도 저를 똑똑하다고 한적은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항상 사회, 도덕, 역사과목과 같은 사회과 과목, 작문이나 문법 등 일부 국어 과목은 거의 만점을 받아서 친구들이 좀 대우를 해주었던 기억은 있습니다.  

아마 선천적으로 국어, 사회과목쪽 머리가 발달했나 봅니다. 

반면에 수학, 음악을 정말 못했죠.

 

오히려 체육을 특출나게 잘했습니다. 

 

제가 공부를 자기주도학습으로 시작한 때는 고등학교 1학년 가을부터였습니다. 그전까지는 수업시간에는 집중을 했지만 자습은 전혀 안하다가 시험기간에 벼락치기만 했죠. 

 

메타인지도 없고, 학습계획도 없었지만, 막무가내로 자습을 하다보니 문제점이 보였고, 그 문제점을 개선해나가면서 성적이 많이 올랐습니다. 특히 영어성적이 많이 올랐죠. 쉬운 영어문제집을 풀면서 영단어를 암기하고, 독해능력을 키워가다보니 절반정도만 맞추던 제 영어실력은 어느덧 최상위권 점수에 까지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차근차근 쉬운것부터 정복하는 방법을 무의식적으로 터득했나 봅니다. 

 

발목을 잡은 건 수학이었습니다. 제가 반에서 2등을 했을 때 전과목 평균점수가 94점 정도였는데, 수학만 50점이었고 나머지 과목은 거의 만점이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어려워서 손을 놓았던 수학은 중학교 수준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고등학교 수학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수학선생님은 수업시간에 나를 자주 불러 칠판에서 문제를 풀게 했는데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많았습니다. 열심히 하는 학생같은데 매번 못풀고 들어가니 말이죠.

 

그러다가 고등학교 3학년때에서야 중학교 수학책을 다시 공부하면서 고등학교 수학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수학이 어려워서 수학에는 시간을 거의 안들이다 보니 수학점수가 더 떨어졌고, 어쩔수 없이 중학교 수학공부를 하였던 것입니다. 공부도 차근차근 쉬운 것부터 하면되는구나 느끼는 순간 수능이 코앞이었고, 역시 수학점수가 너무 낮게 나왔습니다. 

 

법대에 입학했는데 교과서에는 한자가 수두룩하고, 법원 판례가 수록되어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동아리 활동, 교회에서 교사로 봉사활동을 하면서 거의 공부를 안하다보니 법학이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습니다. 고시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그나마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군으로 입대했습니다.  

 

운이 좋게 숙소관리병이 되어 고시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민법, 형법, 헌법 법학 교과서를 각각 10번씩 이상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면서 꾸역꾸역 읽었더니 점점 이해가 되는 부분이 많아졌습니다. 한 문장 한문장을 곱씹으며 이해하는 과정이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과감히 넘어가는 것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다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이해력이 늘어난 걸 보면 몇번 읽었을 때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지능이 낮음을 탓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지레 포기하면 포기하는 사람만 손해지요.

 

그 결과 논리력, 사고력, 이해력, 암기력과 같은 지적인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고등학생때부터 무대뽀로 공부하던 버릇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물론 신림동 고시학원 강사가 또는 대학선배가 또는 주변 법조인 지인이 학습방법이나 노하우를 알려줬더라면 훨씬 수월했겠지요. 그런 배경이 없는 나는 무대뽀 공부방법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보면 메타인지가 참으로 중요한 것을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내가 아는 것은 놔 두고, 모르는 부분에 집중했더라면 훨씬 더 수월하게 공부할 수 있었는데 그때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공부를 했던 것입니다. 

 

그전까지 나는 신문기사를 읽는데 약간의 한계를 느꼈고, 사회과학 서적을 이해하는 것도 그리 녹록치는 않았습니다. 다만, 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수능과목인 언어영역이나 내신 국어시험은 좋은 성적을 얻었기에 독해력이 그리 부족한 편은 애초에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대학교과서나 신문기사는 나에게 쉬운 산은 아니었습니다. 

 

서른즈음에 로스쿨에 들어가면서 생존을 위해 본격적으로 다시 한번 법서를 파고들었을 때에는 기존의 향상된 독해력이 나에게 큰 자양분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제는 큰 어려움이 없이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할 수준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변호사가 되고 나서는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법원에 제출하는 서류, 검찰청이나 경찰서에 제출하는 서류는 대부분 설득의 뜻이 담긴 문서입니다. 논증의 구조입니다. 이를 위해 여러 논문을 참고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의학논문을 자주 보기도 하지만 그 어느 하나 나에게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습니다. 신문기사 역시 나에게는 술술 익히는 류가 되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지적능력도 향상된다는 것입니다.

중학교 재학시절 어느 누구하나 나에게 우등생이라고 불러주거나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명문대 갈 정도의 성적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주변 사람들은 나를 똑똑한 사람이라고 평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글짓기 실력이 있다는 평은 중학교 시절부터 간간히 들어 왔던 정도였습니다. 

 

20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탐독한 법률교과서로 인한 영향인지, 아니면 그 과정에서의 논리적 사고력 배양 경험때문인지 나의 사고력은 제법 좋아졌습니다.

로스쿨에서 서울대 등 명문대 출신들과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내 지적인 능력이 전혀 부족하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자주 성적장학금 선정대상이 되었고, 졸업할 때도 120여명중 20등 안에 들었으니까요. 

그것은 변호사로서 활동하는 현 시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십대 후반의 수학능력시험 결과로 인한 출신 대학은 사실은 지적 능력을 잘 대변하지는 못합니다.

독서량과 경험치가 늘어나고, 깊은 사고력을 배양하는 과정이 동반되는 시기를 경험한 사람은, 선천적 지능을 가진 사람만큼이나 아니면 나중에는 그보다 더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 과거로 돌아가 십대의 나에게 학습조언을 해 준다면 메타인지를 강조하겠습니다. 

잘 못하는 수학에 시간을 들여 집중하라고.

공부가 안된 초등학교 고학년 산수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잘 아는 부분은 너무 시간을 들이지 말라고. 

그럼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충분히 합격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성적은 오르는 것이니까요. 

 

저처럼 주변에 학습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면 무대뽀로 공부하세요. 그럼 명문대까지는 못가더라도 자기주도학습의 버릇이 생길 것이고,  결국 저처럼 전문직인 변호사가 될 정도의 지적 능력이 생길 것입니다. 

 

아니, 메타인지학습 관련 책을 몇권 읽어보세요. 사람이 없다면 책이 알려줄 것입니다. 그런데 메타인지라는 말을 당신에게 전달해 줄 사람/매체는 있어야겠네요. 어떡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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