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를 꿈꾸는 이들에게(김재호)

나에게 사치였던 것들

김재호작가 2023. 1. 10.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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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로스쿨 입학을 준비하기 위해 신림동에 가는 것은 사치였습니다. 그래서 집 근처 공공도서관에서 공부를 했지요. 로스쿨에 입학하기 전에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신림동에 가는 것은 사치였습니다. 그래서 노량진 어느 고시원에서 총무를 하면서 한번의 사법시험을 응시했지요. 대학교 도서관에서 몇년이 지난 문제집을 빌려 풀면서 한계를 느꼈습니다. 이렇게 뒤떨어진 정보를 가지고는 최신 판례가 출제되는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없겠구나. 그리고 바로 취업을 하기로 마음먹었지요. 

 

대학교에 다니면서 계절학기 수강은 사치였습니다. 계절학기 수강료가 너무 비쌌기 때문입니다. 학점관리를 하려고 방학 때 공부를 하는 것도 나에게는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이었습니다. 학점을 높게 받지 못하였더라도 방학 때는 놀거나 돈을 벌어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는 수원 이마트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했고, 가을에는 손세차를 했다가 외제차 주인에게 컴플레인을 받기도 했고, 코엑스에서 물건을 나르는 아르바이트도 했지요. 한번은 성인 남자를 목마태우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1시간을 버티는 게 조건이라 결국 실패하고 돈도 못 받고 돌아온 적도 있었습니다. 

 

수능이 잘 나왔음에도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재수를 선택하지는 않았습니다. 재수를 했다면 당연히 혼자서 집에서, 공공도서관에서 공부를 했겠지요. 입시학원에서 공부하는 사치를 부릴 정도로 집이 넉넉하지는 않았거든요. 돈이 없어서 보다는 그저 수능공부에 질려서 1년 더 하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야망이 큰 학생은 전혀 아니었죠. 

 

학창시절 과외는 사치였습니다. 멀리서 따로 살면서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하시던 아버지, 장사재주없이 이불가게를 하며 두명의 대학생 학비를 대주시던 어머니 밑에서 과외는 커녕 학원도 한번 다녀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고등학교 3학년 여름쯤 수학과외를 권유하셨습니다. 나는 집안 사정을 너무 잘알고 있던 터라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중학 수학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막무가내로 공부하면 된다고 엄마를 속였습니다. 

 

과외를 받았다면, 재수를 했다면, 계절학기를 수강했다면, 신림동에서 고시학원을 다녔다면 제 인생은 좀 더 좋아졌겠지요. 좀더 좋은 대학교 졸업장, 좀 더 좋은 학점, 사법시험 합격으로 변호사가 빨리 될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과외를 받지 않아서, 재수를 하지 않아서, 계절학기를 수강하지 않아서, 신림동에서 학원을 다니지 않아서 저는 자기주도학습을 연습하게 되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 버는 것이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진짜로 원하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뼈아팠던 집안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한 때 밑반찬을 건네주러 고시원 총무를 하던 곳까지 찾아왔던 엄마를 법조인의 꿈을 포기하던 상황에서 나도 모르게 매몰차게 대했던 기억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항상 긍정적이지는 못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내가 충분히 감당했던 상황들, 내가 견뎌냈던 시간들, 내가 감당할 수 없었던 괴로움들은 모두 인생의 자연스러운 한 장면들입니다.

 

지금 극복이 힘든 것은 성장할 여지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는 자연스러운 이치도.

힘들기만 한 지금의 감정, 바로 성공하고 싶은 욕망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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