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존재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제때에 죽도록 하라”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제때에 죽는 것이란 자신이 원하는 때에 죽음을 맞이하는 ‘자유로운 죽음’을 의미한다. 니체는 왜 우리가 원하는 때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라고 하는 것일까? 니체는 이어서 “결코 제때에 살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제때에 죽을 수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즉 제때에 살아 본 사람만이 제때에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제때의 삶이란 바로 ‘초인’으로서의 삶이다. 자기 자신을 극복하려는 초인이야말로 제때에 살고 제때에 죽을 수 있다. 니체는 죽음을 맞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확실한 전망을 통해 모든 삶에도 맛있고 향기로운 경쾌함이 한 방울 섞일 수 있다.”
“나는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자극이 되고 서약이 되는 삶에 완성을 가져다주는 죽음에 대해 알려 주겠다”
-니체
죽음이란 삶의 파멸이 아니라 삶의 완성이다. 죽음에 대해서 늘 생각하면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지금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 지금 자신이 추구하는 것들이 진정한 가치가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다시 말해 죽음을 염두에 두고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무모한 삶에 대한 욕망을 떨쳐 낼 수 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을 낙관적으로 볼 수 있고, 숨이 붙어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 장재형(마흔에 읽는 니체)
유한한 인간이, 죽을 운명이, 삶을 제대로 향유하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이 지혜롭지 못하다는 뜻이다. 삶을 향유하는 것이란 자기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원하는 것이 결국 하찮은 것이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결국 그도 삶을 제대로 향유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니체가 말하는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는 말은, 유한한 인간의 삶의 완성을 위해서는 삶을 자유롭게 살아라는 제한적인 의미이다.
삶은 미완성이다. 죽음 앞에 어쩔 수 없이 중단해야 하는 것이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 아니다. 삶의 미완성이다. 그러나 니체의 말처럼 삶을 자유롭게 향유하다가 죽을 것인가 아니면 죽음을 맞이하기 까지 무언가에 이끌려 가고야 말 것인가. 니체의 말이 맞다. 다만, 그 표현은 부정확하다. 의미있는 죽음은 의미있는 삶의 미완성이다. 인간이 죽을 운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 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가야 해
사랑은 미완성 부르다 멎는 노래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불러야 해
사람아 사람아 우린 모두 타향인 걸 외로운 가슴끼리 사슴처럼 기대고 살자
인생은 미완성 그리다 마는 그림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그려야 해
친구야 친구야 우린모두 나그넨걸 그리운 가슴끼리 모닥불을 지피고 살자
인생은 미완성 새기다 마는 조각 그래도 우리는 곱게 새겨야 해
-이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