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 창세기를 읽다(김재호)

고자질, 편애, 잘난척, 살인동기, 속임, 위선

김재호작가 2022. 11. 7. 06:54
728x90

요셉은 그전에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가서 그대로 일러 바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유독 요셉을 편애하였습니다. 자기의 꿈을 떠벌리며 자신이 형들보다 잘났다고 말하는 요셉은 형들에게 눈엣가시와 같았습니다. 인지상정으로 누가 요셉을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살인의 동기가 되는 것은 과도합니다. 아버지의 편애에 대한 보복으로 이러한 선택을 하는 것도 굉장한 무리입니다. 특히, 악행을 숨기고, 아버지를 속이고, 위로까지 하는 위선을 보이다니요? 

 

그런면에서 르우벤의 태도가 돋보입니다. 그리고 유다의 태도를 보며 그것이 우리의 태도가 아닐지 되돌아 봅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제는 요셉이 형들을 속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 새끼 죽여버리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내가 잘못한 것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쳤다면 그리고 그것때문에 내가 아버지에게 징계를 받게 되었다면,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에서 멀어지게 되었다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그런 일들이 쌓이다보면 저 새끼가 안 보였으면 좋겠다. 저 새끼가 내 인생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에 의연해 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편애는 아버지의 잘못된 행동인 것이지, 자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의한 아버지의 징계는 당연한 것이지, 반드시 동생의 탓이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성숙한 르우벤의 태도입니다. 

 

평범한 나는 유다와 같이 요셉의 못된 짓에 대해, 아버지의 잘못된 편애 행동에 대해 어느 정도 보응하는 선에서 행동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악한 행위입니다. 아버지를 속이는 것이고, 아버지에게 극도의 고통을 주는 것이고, 동생에게 역시 동생이 한 행동보다 훨씬 더 극도의 징계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좋지 않습니다. 악을 더 큰 악으로 갚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타인을 위해서는 당연하고요.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부터 순간 감정에 치우쳐 지나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728x90
댓글수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