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는 인생, 최고의 인생
나에게 소망이 있었다면 그것은 축구선수였습니다. 국민학교 4학년즈음 나는 내 인생의 1/3이 축구라고 느꼈습니다. 1/3은 하나님, 1/3은 엄마였던 것 같습니다. 11살 소년에게 다시 물어볼 수도 없습니다. 최면이면 가능할 수 있겠지만, 그걸 묻기 위해 최면을 하기는 번거롭습니다. 나는 내꿈을 아빠에게 말한 적이 있었는데, 아빠는 내 얘기에 실망한 듯 돈이 많이 들고, 빽이 없으면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고 말했고 나는 그때부터 축구선수의 꿈을 접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축구를 정말 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이었습니다. 나보다 드리블을 현란하게 하는 아이가 있었고, 달리기가 빠른 아이가 있었고, 몸싸움을 잘하는 아이가 있었고, 시야가 넓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발리슛이 뛰어난 선배도 있었습니다.
내가 정말로 축구선수가 되기를 원했다면 중학교시절 학교 축구부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엄마에게 매달려보았겠지만, 초등학교때부터 축구를 해 오던 학생들이 모여있던 축구부는 14살의 눈에도 공부와는 담을 쌓은 듯 보였고, 그리 전망이 밝아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소중했지만 간절하지 않았던 축구선수의 꿈을 스스로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려놓았습니다.
내가 중학교 때 되고 싶었던 것은 체육선생님이었습니다. 반에서 운동을 제일 잘하는 아이가 바로 저였습니다. 체육선생님은 저의 턱걸이 실력, 스트레칭 능력, 멀리뛰기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제법 공부를 하는 나를 후계자(?)로 여기지는 않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고등학교 올라와서는 그런 것이 더 눈에 띄였습니다. 물론 공부에 더 집중하고 몰입해서였겼지만, 체대에 간다고 하는 아이들은 공부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나는 내 길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학창시절 다른 꿈은 정치인이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국민학교 시절 시골에서 싸움짱이면서 공부도 잘해서였을까요? 막상 수원이라는 도시에 올라오니 싸움짱도 아니고, 공부도 보통수준이었는데도 뭔가 스스로 잘났다는 생각이 있었는지 막연히 정치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것도 간절한 꿈은 아니었고, 안정적인 공무원을 할까 고민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 교회 수련회에서 통성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진로를 물어보던 중 너는 대통령이 되리라는 환청을 들었습니다. 이게 뭔가 싶기도 하고,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가 싶기도 하면서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그때부터 대통령이 되기위해 열심히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50명중 10등 정도 하다가, 7등, 6등, 2등 1등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점심먹고도 영어단어를 외우고, 저녁먹고도 공부를 하고 참 유별나게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스스로 열망하던 꿈이 아니었기에 수능 100일을 남겨두고 탈진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그냥 시간만 보냈고, 특히 수학공부는 계속 손을 놓았습니다.
대학교 들어가서는 인권변호사를 꿈꾸었는데, 사람들을 돕는 것이 의미있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돈보다 사람들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 더 추구할 가치가 있다고 여겼습니다. 여차여차해서 로스쿨을 졸업하고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려고 장애인단체를 들어갔다가는 인권단체가 꼭 인권과 관련된 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인권에 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장황하게 내 진로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나 스스로에게 살면서 후회한 순간이 없는지 묻고 싶어서였습니다. 스스로 포기한 것은 정치인이 되는 것이었는데, 그건 내꿈이 아니라 헛된 환청이었기에 전혀 후회는 없습니다. 또 내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는 것에 별 소질이 없음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윌리엄 윌버포스처럼 세상을 더 좋게 만들어가는 정치인을 한 때 꿈꾼적도 있었지만, 나 스스로가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님을 알고부터는 그렇게 일생동안 좋은 마음으로 정치에 헌신할 사람은 아니란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건 아마도 우리나라에는 그런 정치인이 아직 없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정치 자체가 정의와 선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타협하고 조정하는 일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을 단지 사명감 없이 자기 입신의 목적으로 활용한다는 것도 내면 깊이에서는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입니다.
후회되는 것은 주변의 환경에 의해 스스로를 제한했던 것입니다. 자기주도적으로 살지 못했던 것입니다. 적극성이 부족했습니다. 어린 시절 축구를 배우고 싶었다면 집이 가난했어도 단 한번의 축구부입단시도라도 해볼 것을, 공부를 잘하고 싶었다면 수학문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져 볼 것을,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고 싶었다면 스스로 인권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볼 것을 하는 것입니다. 모두 내적 동기가 부족했기에 외부로 발현이 안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너무 소극적으로 환경에 따라 순응한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렇게 과거를 돌이켜보니, 정말 내가 원하는 것에 더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야 더 큰 적극성을 갖고 후회없는 삶을 살 수 있으니까요. 어린이가 자기 자신을 얼마나 알겠습니까? 세상을 얼마나 알겠습니까? 부모의 충분한 경제적, 사회적, 지적, 정서적, 전반적 양육을 받고 자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다들 부족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성장시켜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후회되는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이제는 모든 것이 스스로의 책임입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고, 내가 선택하지 못한 것입니다. 내가 결정한 것이고, 내가 결정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장수할 것인지 사고로 죽을 것인지, 병으로 죽을 것인지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내면에서 하는 소리를 듣고, 진정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후회없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나는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을 최대한 발현하기 위해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정말 내가 의미있게 여기고 가치있게 여기는 것에 집중하고 몰입하겠습니다. 그것이 내 미래를 위한, 내 인생을 위한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