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를 꿈꾸는 이들에게(김재호)

사내변호사 잠깐 경험하기

김재호작가 2023. 3. 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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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셋. 제가 법률사무소를 개업한 나이입니다. 

서울최북부 상계역 주상복합아파트상가 2층 조그만사무실에 셀프인테리어를 하고 행정사사무실을 열었지요.

막 가을로 넘어가는 계절이라 창을 열면 가로수 은행잎이 초록에서 노랑으로 넘어갈 즈음이었습니다. 

한가하게 새소리를 들으면서 일을 시작했죠.

 

1년넘게 수십건의 사건을 맡다보니 갑자기 부담감이 밀려왔습니다. 

한달 수임료가 2천만원을 넘기니 혼자서 다 하기가 버거워졌습니다. 

그래서 고용변호사를 채용했습니다. 

고용변호사가 일을 다 처리해주겠거니하고 저는 좀 쉬려고 했는데, 

고용변호사는 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아내와 캐나다 유학을 계획했습니다. 

 

책임감있게 맡은 사건들을 겨우 다 처리해주고, 더는 사건을 맡지 않았습니다. 

캐나다유학을 준비하면서 잠시 6개월정도 회사변호사로 취업을 했습니다. 

 

매일 아침 늦잠을 자다가 회사원이 되니 아침 7시에 일어나 급하게 씻고,

매일 천천히 아침밥을 책겨먹다가 이제는 아침밥 먹을 생각도 못한 채

전철역으로 내 달렸습니다.

 

오전에 햇살을 맞으며 천천히 터벅터벅 중랑천 길을 걸어 사무실로 출근하다가

강남, 여의도까지 먼거리를 가는 전철에 타서 빈자리를 찾아보지만

점점 더 사람들은 불어나고 급기야 한 발자국 움직일 틈도 숨쉬기도 버거워집니다.

 

진을 다 뺀 후에 급히 회사에 도착하면 겨우 지각을 면했습니다.

아니 가끔 지각도 했습니다. 

 

하루종일 회의는 왜그리도 자주있는지,

회의를 하는 건지 아랫사람 잡는 건지

온갖 소음에 시달리다보면 저녁이 되고

다시 전철을 타고 한시간 반을 걸려 집에 갑니다.

저녁이 없는 삶 늦은 저녁을 챙겨먹고 겨우 드라마 하나 보고 잠을 잡니다.

 

자아가 강한 나에게 회사원생활은 참으로 무의미했습니다. 

나로 살아가지 못하는 삶,

내가 원하는 조직도 아닌데 조직의 일부가 되어버린 삶은

참으로 나 답지 않아 보였습니다. 

 

사내변호사로서 나는 계약서 검토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각 현업부서의 법률이슈를 검토했지요.

비즈니스기획단계에서의 리걸리스크(법적위험)을 살펴보기도 했고요.

협상을 하기도 했고요.

외부 변호사와 미팅을 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사실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6개월끝에 사내변호사를 그만두게 된 것은

캐나다유학을 가려고 했던 계획이 무산된 탓도 있지만 

심심하고 무료해서 금방 퇴사한 것도 있지요.

 

회사원이라는 시를 써봅니다. 

 

회사원은 윗사람 눈치보랴 비위 맞추랴

정신이 자아를 내려놓는다.

부끄러움도 나다움도 잠시 비우다보면

내가 나인지 지금 여기가 어딘지 혼란스럽다.

 

그리고 같이 일하는 동료중 몇몇은 나의 경쟁자다.

같이 지내는 사람들은 친절하고, 무던하고, 까칠하고, 얼굴도 보기 싫고 그런 류의 사람들로 구성된다.

 

월급날은 내 일값을 확인하는 날이다.

하루 대부분을 매여 있으니 내 인생 값이기도 하다.

한달 0백0십만원. 나의 한계가 규정되는 날이다.

 

회사에 들어가는 이유는

매달 꼬박꼬박 생계비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걸로 생활비, 유류비, 대출이자, 경조사비, 용돈...

 

회사를 나오는 이유는

원래 있을만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고 지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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