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를 꿈꾸는 이들에게(김재호)

종교적 착각이 불러온 진로참사

김재호작가 2023. 1. 1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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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1학년 때 만든 공익인권법학회 학회원 모집공고

 

변호사가 되고 싶었던 것은 인권변호사가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인권변호사가 되려고 했던 것은 정치인이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이 되고 싶었던 것은 그것이 내가 믿는 신의 뜻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제 진로의 모든 문제는 바로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교회 수련회 사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빡세기로 악명높은 서울 모 교회에서 개최하는 중고등부 여름 수련회에 수천명의 학생이 전국에서 경기도 모 기도원으로 모였습니다. 나는 기독교인이었고,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지요. 당시 운동을 아주 잘했기에 체대에 가고 싶었지만, 공부도 좀 했기에 안정적인 공무원이 될 생각도 있었습니다. 체대에 가서 체육선생님이 될 것인가, 공무원이 될 것인가 고민하던 차에 하나님에게 물어보기로 했지요. 교회 수련회에서 예배를 드리던 중 칼칼한 목소리로 한시간 넘게 이어진 목사님 설교가 끝나자 주여~주여 외치던 통성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엄청난 함성과 같은 기도소리에 묻혀 나도 하나님에게 기도를 하면서 물었지요. 하나님 저는 무엇을 할까요? 하나님은 나에게 너는 대통령이 될지라. 네? 갑자기 분위기 대통령? 뜬금없이 대통령이라니요. 이렇게 저의 착각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나만의 순진한 착각을 진짜로 오해하고 정치인이 되기로 굳은 결심을 합니다. 신앙심이 충만하던 그 때 나는 신의 뜻대로 살기로 다짐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교회 중고등부 부장선생님이자 모대학교 이공계 교수이던 안수집사님에게 정치인이 되기 위한 학과를 상담하면서 경제학, 법학을 추천받았습니다. 수학을 잘 못하던 나는 법학으로 정하고, 이왕이면 서울대 법대를 가자고 목표를 정했습니다. 그게 10년을 이어져 로스쿨 진학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제 착각은 마흔 한살이던 최근에야 깨집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에게 전임교수 임용이 되냐고 물었는데, 하나님이 된다고  마음속에 떠올랐고, 결국은 전임교수가 안되었습니다. 동시에 몇년 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며 결혼해달라고 스토킹하던 교회 목사/전도사가 형사처벌받았다는 기사가 떠올랐죠. 아. 나는 20년 넘게 종교적 착각에 빠져 있던 것이었구나. 

 

로스쿨에 입학하던 당시 내 유일한 꿈은 인권변호사였습니다. 그래서 위와 같이 인권학회도 만들고, 홍보를 했죠. 그런데 변호사가 되고 난 후 생업으로 개인법률사무소를 개설한 후에는 그 인권변호사의 꿈을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변호사로서 살아온 삶을 반추해 보자면 약자에게 관대하지도 않았으면서 굳이 공익이나 인권과 관련된 일을 하려고 하는 모습, 이해타산적이면서도 이타적인 삶을 꿈꾸는 모습, 나 자신과 가족에게 잘하지도 못하면서 이웃을 품으려는 모습 하나같이 모순되고 부자연스럽습니다.

 

  꿈없이 생계로서 변호사업을 이어가다 보니 심리적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죠. 아래와 같이 영국 한 연구에 의하면 변호사가 스트레스로 정신병이 잘 생기는 직업 2위였다고 합니다. 

 

 

영국 옥스포드대학교 심리학자 캐빈 두턴(Kevin Dutton)은 직장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영국인 수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는 심리학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정신병을 가졌거나 증세가 있는 사람들이 특정 직업군에 몰려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스트레스가 높은 직업 종사자일수록 정신병 증세가 많았는데, 정신병 증세가 가장 많은 직업은 CEO, 2위가 변호사였습니다. 방송국PD, 영업사원, 외과의사, 기자, 경찰, 성직자, 요리사, 공무원 순이었습니다. 영국인 점, 그리고 설문대상이 수천명인점 고려하면 우리에게 바로 적용은 어렵지만 변호사가 평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제가 로스쿨에 입학한 이유는 종교적 착각 때문이었지만, 덕분에 관심없던 공부도 원없이 하고, 지적 능력도 훨씬 좋아지고, 이렇게 책을 자유자재로 읽고,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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